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넌 나처럼 살지 말아라
작성자 산청고등학교 등록일 2020.09.15

박노해

아버지
술 한 잔 걸치신 날이면
넌 나처럼 살지 말아라.
어머니
파스 냄새 물씬한 귀갓길에
넌 나처럼 살지 말아라.
이 악물고 공부해라.
좋은 사무실 취직해라.
악착같이 돈 벌어라.
악하지도 못한 당신께서
악도 남지 않는 휘청이는 몸으로

넌 나처럼 살지 말라 울먹이는 밤
내 가슴에 슬픔의 칼이 돋아날 때
나도 이렇게는 살고 싶지 않아요.
스무 살이 되어서도
내가 뭘 하고 싶으지도 모르겠고
꿈은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고
어머니, 당신의 소망은 이미 죽었어요.
아버지, 이젠 대학 나와도 내 손으로
당신이 꿈꾸는 밥을 벌 수도 없어요.
넌 나처럼 살지 마라, 그래요.
난 절대로 당신처럼 살지는 않을 거예요.

자식이 부모조차 존경할 수 없는 세상을
제 새끼에게 나처럼 살지 마라고 말하는 세상을
난 결코 살아남지 않을 거예요.
아버지, 당신은 나의 하늘이었어요.
당신이 하루아침에 벼랑 끝에서 떠밀려
어린 내 가슴 바닥에 떨어지던 날
어머니, 내가 딛고 선 발밑도 무너져 버렸어요.
그날, 내 가슴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은 공포가
영원히 지워지지 않은 상처가 새겨지고 말았어요.
세상은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고
그 어디에도 기댈 곳도 없고

돈 없으면 죽는구나
그 날 이후 삶이 두려워졌어요.
넌 나처럼 살지 마라,
알아요, 난 죽어도 당신처럼 살지는 않을 거예요.
제 자식 앞에 스스로 자신을 죽이고
정직하게 땀 흘려온 삶을 내팽게쳐야 하는
이런 세상을 살지 않을 거예요.
나는 차라리 죽어 버리거나 죽여 버리겠어요.
돈에 미친 세상을, 돈이면 다인 세상을
아버지, 어머니
다시 한 번 예전처럼 말해주세요.

나는 없이 살아도 그렇게 살지 않았다고
나는 대학 안 나와도 그런 짓 하지 않았다고
어떤 경우에도 아닌 건 아니다.
가슴 펴고 살아가라고
다시 한번
예쩐처럼 말해주세요.
누가 뭐라 해도 너답게 살아가라고
너를 망치는 것들과 당당하게 싸워가라고
너는 엄마처럼 아빠처럼
부끄럽지 않게 살으라고
다시 한번 하늘처럼 말해주세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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